영일교회

영일교회 사람들의 신앙과 삶의 이야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달의 인물] 현재희

[이달의 인물] 현재희

미소 품은 문지기!
이른 주일 아침…​
​본당 문 앞을 들어서면 언제나 웃는 얼굴로 성도를 맞아 주는 반가운 얼굴이 있다.​
연예인도 아닌데 연예인 만큼이나 표정관리가 잘 되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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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가족부를 자랑합니다!

새 가족부를 자랑합니다!

첫 번째 순서로 새 가족 부를 소개합니다.
새 가족부의 부장님은 김명심 권사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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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누구...신가요?



    먼저~ 사진 속 두 분의 관계에 대한 퀴즈를 내겠습니다.^*^
    3문제 모두 다 맞추신 분들은 지금처럼 쭉- 교회 생활 해주시면 되겠고요~
    1문제를 맞추거나 답이 다 틀린 분들은 우리 교회 가족 구성원을 더 잘 알기위해 더욱 더 분발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답은 이 칼럼의 맨 마지막에 있습니다.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요?
    사진 속 두 분의 관계는 무슨 관계일까요?
     
    1번
     

     
    2번


     
    3번


     
     

    장혜정 집사님과 인터뷰를 나누었습니다.

     
    장집사님!~ 장집사님은 누구신가요???


     
    Q : 집사님~ 언제부터 영일 교회에 나오게 되었나요? 교회에 나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저는 2007년 5월에 영일 교회에서 결혼예식을 하면서 처음으로 영일교회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1년 정도 주일 예배를 드리다가 다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큰아이 (시현)가 두 살쯤 되었을 때 시어머니께서 주일마다 저희 집에 오셔서 아이를 교회에 데리고 가시는 거예요.~ 솔직히 너무 편했죠. ^^ 그 당시 저는 둘째를 임신 중에 있었는데 주일 한나절을 큰아이 없이 조용히 쉴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주일에 어머니께서 시현이가 본당 무대에서 율동을 하니 보러가자고 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하나님이 저에게 보여주신 것은 저희 딸의 재롱이 아니라 사춘기 아이들의 뜨거운 worship, 세상 속 아이들과 구별된 하나님의 작품들이었어요. 그 주부터 지금까지 매주 영일 교회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답니다.

    Q : 집사님의 가족 상황을 얘기해 주실래요?
    A :시아버지 (김지영집사님), 시어머니 (손남순 권사님), 
       남편 (김광식 집사), 초등부 (김시현), 유년부 (김규현)
    <따뜻한 가족사진>
    Q : 가족과 함께 교회에 나오는 것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불편한 점은 또 무엇일까요? 솔직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A :좋은 점이 정말 너무 많죠.^^ 무엇보다 시부모님께서 늘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이 가장 좋은 점 이구요~ 교회 일을 할 때 시부모님들이 기쁘게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교회 행사나 일정들을 아시니까 항상 이해해주시며, 같은 시각으로 같은 생각을 하니까 큰 이견 없이 늘 배려와 응원 속에서 신앙생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 정도는 있을 법도 한데 저는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 혹시 모르죠.~ 시어머니는 불만이 있으실 지도...ㅎ ㅎ ^^

    Q : 많은 분들이 영일 교회를 가족교회라고들 합니다. 동의하시나요? 가족교회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네~ 동의합니다. 저희가족을 비롯해서 영일 교회에는 많은 가족들이 계신 것 같아요. 부족한 제가 말씀드리기에는 어려운 질문인데요... 하나님께 영광을 위한 일인지 아니면 세상 속에서만 빛이 나는 일인지를 선택하고 그곳에 집중하면 더 넓은 의미의 또 다른 가족들과도 잘 협력되어지지 않을까 감히 생각합니다.

    Q : 집사님 어머니(손남순 권사님)에게 한 마디 하신다면?
    A :늘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셔서 감사해요. 어머니의 기도가 저희 가족에게 큰 힘이 됩니다. 앞으로도 항상 저희들 곁에서 지켜봐주시고 기도로 응원해주세요~

    Q : 남편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A :어린 시절부터 학창시절까지 늘 교회를 다니던 사람이 성인이 되고 세상 속에서 살다가 다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줘서 너무 감사하고.... 아이들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주일성수를 지키는 모습을 존경합니다. 한 가지 욕심내자면 시간을 정해서 가정예배를 짧게라도 드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Q :우리 교회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영일교회의 장점은 너무나도 많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쏙쏙 들어오는 담임목사님의 강해설교가 아닐까요!

    Q : 교회에 바라거나 부탁하고 싶은 부분은?
    A :유년부, 초등부, 중등부 학생들이 주일 예배 후에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산이나 교회 시스템을 모르고 드리는 말씀이니 그냥 이런 의견이 있다는 정도로 참고만 해주세요!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은 역시 믿음의 가정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구나... 라는 겁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 하셨던 마음.... 또 아내가 남편을 믿음의 길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던 마음들이 너무 소중하고 가슴 찡하게 느껴졌습니다. 앞으로도 주님 보시기에 크게 기뻐하실 아름다운 가정 이루시고 더욱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정답 : 1-④   2-③   3-①
     
    취재 / 박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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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승리뿐!”
    故 박운섭 장로님을 기리며

    올해 1월 7일은 지금의 영일교회가 있기까지 사랑으로 섬기셨던 고 박운섭 장로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하신 날입니다. 이에 장로님의 신앙을 본받고자 생전에 하나님을 섬기신 모습을 나누고자 합니다.
    특별히 장로님의 큰아드님이신 박광빈 목사님이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시느라 바쁘신 가운데서도 아버지를 기억하며 글을 보내주셨고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강성일목사님함께 등반에 오르신 사진과 아버님의 독사진>
    나(박광빈 목사)의 부친이신 박운섭 장로님은 일평생 믿음으로 사신 분이시다.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장로님의 어머니인 고 곽무옥 속장님께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신 후, 불교를 믿고 있던 가문에서 많은 핍박을 받게 되어 어린 나이에 빈손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장로님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오직 기독교 신앙으로 일평생을 사셨고, 자녀와 손주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셨다.
    “오직 승리뿐!”은 1978년 내가 신학생이 된 첫날 선물로 주신 성경책에 써 준 표어이다. 그때 아버지는 “너는 지금까지는 내 아들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주님의 아들이다. 너의 가는 길에는 주님이 함께 하셔서 오직 승리만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생전 아버님의 필체>
    또한 아버지는 섬김의 삶을 사시려고 노력하신 분이다. 청년 시절부터 1973년 서울로 이주하기까지 기독교대한감리회 동두천교회를, 1973~1977년까지는 성북교회를 섬기셨고, 1977년 강성일 목사님을 도와 영일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함께 하셨고, 영일교회의 역사와 함께 33년을 섬기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아버지는 늘 담임목사님의 말씀에 성도는 순종해야 한다고 하셨고, 또 그렇게 하시려고 노력하신 분이시다. 아버지는 영일교회의 장로님이 되신 후, 사업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시게 되셨다. 장로로서 교회를 떠나 계신 것에 대해 아버지는 강 목사님과 영일 성도님들께 늘 미안해하시며, 몸으로 충성을 못하니 헌물로라도 섬기시려고 노력하셨다. 그 당시 영일교회는 교회부지도 마련해야 하고, 건물 건축도 해야 했는데 아버지는 가정보다 먼저 교회를 우선 순위로 두시고 섬기신 걸로 기억한다.(그 당시에는 우리 가정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일 성도들이 힘과 정성을 다해 교회를 건축하고 부흥시키는 일에 함께 했었다.)
    <아버님의 장학금 봉헌>
    또 다른 일례로는 장학금 봉헌이 기억난다. 즉 지금의 영일장학회의 씨앗헌금을 아버지께서 봉헌하신 것으로 안다. 1985년 6월의 어느 날의 일로 기억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장학헌금을 봉헌하라고 편지와 달러를 보내셨다. 당신께서 어릴 적에 학비로 고생을 많이 했기에 교회가 학비 때문에 고생하는 학생들을 도울 수 있다면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러한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시고 순종하여 당시 2,000만원이나 되는 큰 돈(당시 말죽거리 아파트 몇채 값?)을 수표와 현찰로 바꾸셨고, 그 돈을 새벽기도회 가는 길에 혼자 운반하시기가 무서우셨는지 나를 깨워 같이 교회로 와서 강 목사님께 드렸던 기억이 난다.
    <공로표창패>
    아버지는 굉장히 부지런한 분이셨다. 운동선수 출신이라서 그러신지 걸음도 무척 빠르셨는데 부활절이 되면 잠이 덜 깬 나와 누나(박현덕 권사)를 부활절 연합예배에 손을 이끌고 데려가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성경 읽으시던 모습, 힘차게 찬송 부르시던 모습, 겸손하게 기도하시던 모습, 설교를 작성하시던 모습, 그리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찬송을 즐겨 부르시던 모습도 스쳐지나간다.
    <아버님과 어머니 두 분 모습과 기념패>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오셨고, 또 우리 2남 2녀를 믿음 안에서 자라도록 가르치신 아버지 박운섭 장로님이셨기에 5대에 걸친 우리 가족 모두(2남 2녀, 8명의 손자와 손녀, 그리고 증손 쌍둥이까지)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신앙인으로 아버지께서 먼저 걸어가신 그 믿음의 길을 감사하며 따라가고 있다.
    <가족이 모두 모인 사진과 표창패>
    일평생을 하나님 우선으로 살아오신 장로님의 귀한 헌신과 믿음을 신앙의 후배들로써 본받는 삶을 살아가며 또한 우리 영일교회 성도 한분 한분의 신앙을 다음 세대가 본받을수 있도록 다시 다짐하는 기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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